고독의 오후

감독알베르트 세라
개봉일2026-06-03
시청일2026-06-14

보통 다큐멘터리라면 하나의 주제를 두고 구성원이나 주변인의 생각을 위주로 촬영한다. 대립하는 의견이 있으면 번갈아 주장을 나열하거나 감독의 의도에 따라 편집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다르다. 투우라는 주제에서 핵심 요소인 소와 투우사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쳐내 정제했다. 투우장 전경이라든지 구경하는 관객, 투우 업계, 소 농장, 투우의 윤리적 논쟁 같은 것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오직 소와 투우사, 투우만 보여준다.

영화 속 투우는 여섯 번 남짓 진행된다. 투우와 투우 전후로 투우사가 준비하는 장면, 투우를 마치고 팀 차량에 올라 숙소로 이동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준다. 다만 여느 다큐멘터리와 달리 해결해야 할 큰 문제나 세기의 라이벌, 성취의 여정처럼 '이야기'를 끌어갈 중심 구조가 없다. 모든 투우는 반복돼 나열되지만 시계열 없이 분절된 독립적 사건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 속 투우는 서로 독립돼 있으면서도 가톨릭 미사처럼 의례적인 복식과 예법의 순서를 따르기에 반복에서 오는 연결이 느껴진다. 이 연결은 시간과, 그 시간을 통과하는 사물의 현상, 인간의 사고가 인식하는 순서로 만들어지는 연결이 아니라, 동일한 의식이 다른 시공간에서 거듭 반복될 때 느껴지는 연결이다. 생김새만 다른 소가 똑같이 피카도르의 말을 들이받고, 반데리예로가 꽂은 여섯 개의 창을 제례의 숄처럼 두른 채 늘 같은 부위를 마타도르의 검에 찔려 쓰러지면, 멱이 따이고 뿔에 밧줄이 묶인 채 마차에 끌려 경기장 밖으로 나간다.

영화 속 투우 장면은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투우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적어도 감독의 입이나 대변하는 무언가를 빌려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투우 예찬에 가깝다(마찬가지로 투우를 예찬하는 어떤 '표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예찬은 감독이 짠 영화의 구조에서 온다. 투우의 정수만 남기고, 투우 바깥의 이야기를 배제하고, 진행 순서도 시간의 연결도 모두 흐릿하게 지운 채, 폭력의 순간과 그 순간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고요를 대비시키는 구조, 그 구조가 투우 예찬처럼 느껴진다. 투우 준비-투우-투우 후 차량 이동이라는 나열은 일종의 표백된 기록 같다. 그 표백된 자리를 내가 원래 지닌 생각과 신념과 감정으로 물들여 가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똑같은 것을 보고 투우의 잔인함과 동물학대 따위를 운운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투우사의 역경과 그 역격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공명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궁금한 점은 중간에 있던 어떤 한 장면이다. 영화는 준비-투우-이동의 반복마다 같은 구도, 같은 형식을 되풀이해 찍는다. 투우를 준비하는 장면은 투우사의 몸과 의복을 가까이서 훑듯 찍고, 모든 투우 장면은 프레임 안에 소와 투우사만 담기도록 극단적으로 줌을 당겨 찍는다. 투우가 끝난 뒤 이동 차량 안 장면은 마타도르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고정 카메라 영상이다. 그런데 중간에 한 번, 차량 이동 상황 중에 카메라가 차창 너머 도시의 하늘을 담는 장면이 나온다. 상영관 속 학살이 시급한 노인들의 추태 탓에 그 장면의 맥락도, 앞뒤 대사도 잘 기억나지 않는게 매우 아쉽다. 다시 보게 된다면 그 부분을 더 집중해서 보고 싶다.